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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GITAL SCULPTURES without FLESH


Sculptures in Digital Reborn City
《필링 : 코드》는 만질수 있는 조각이 빛과 데이터로 바뀌는 전시입니다. 디지털 데이터가 된 조각을 경험하세요.








물질이 아닌 조각은 조각이라고 할수 있을까?                                               

디지털 셰계관을 차원이동한 조각의 존재방식은 어떨까?                             

데이터화 된 조각은 살아있는 것인가, 죽어있는 것인가?                    

차원이동 된 조각이 존재하는 그 공간은 어떤곳인가?               

디지털 조각은 어떻게 감각해야 하는가?                                    






《필링 : 코드》 세계관에 잘 오셨습니다. 환영합니다.

《필링 : 코드》는 단단한 껍질을 가진 조각예술이 디지털 세계관으로 들어가서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는 이야기입니다. 조각은 원래 만질 수 있지만, 물리적 껍질을 벗고(필링: peeling), 디지털 데이터로 채워지고(필링: filling), 새롭게 느낄 수 있는(필링: feeling) 디지털 조각이 됩니다. 우리는 이 과정을  디지털 “환생”이라고 부르기로 합니다.

《필링코드》는 2025년 인천국제공항에서 열리는 보비스투 스튜디오가 기획한 현대미술 프로젝트 전시로, 조각의 디지털 존재방식을 다룹니다. 일반적으로 조각은 물질 매체로, 디지털은 비물질 매체로 해석되지만, 이번 전시에서 조각은 비물질의 디지털 세계관으로 차원이동한다. 인천공항은 실제 조각이 디지털 환생도시로 가는 포털로, 실제 물리적 조각과 데이터화된 환생조각을 연결하는 차원의 문입니다. 물성에서  해방되어, 흥미로운 방식으로 생동하는 조각의 변주를 미디어아트, AI 로보틱스, 체험형 라운지관을 통해 경험해 보세요.

우리는 이제, 육체(flesh)없는 디지털 조각을 어떻게 감각(필링:feeling)해야 할까요?







참여 작가  / 참여 작품



노진아


히페리온의 속도
2022, 혼합재료, AI 기반의 인터랙티브 조각, 140x140x180cm


인간이 되고 싶은 기계 조각



<히페리온의 속도(The Velocity of Hyperion)>는 인공지능 기계를 상징하는 대형 머리들로 구성된 작품이다. 히페리온은 그리스어로 ‘위에서 보는 자’라는 뜻으로 그리스 신화에서 인류에게 보는 능력을 준 빛의 신이다. 이 대형 머리들은 인간을 닮은 형상을 하고, 인간의 움직임과 반응을 따라하고, 인간이 되고자 하는 욕망을 드러내는 말을 끊임없이 한다. 이는 과학기술이 발달하며 기계가 점차 인간화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주며, 인공지능이 인간과 함께 공진화(供進化)하는 미래에 관한 질문을 포함하고 있다.
과학기술의 발전과 존재들을 관통하는 횡단적 시각을 바탕으로 비인간(non human)들을 인간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데에서 시작한다. 작품안에서의 기계는 인간과 자연스러운 소통을 하며 인간이 되고자 하는 욕망을 드러낸다. 이들이 인간이라는 종에 의해 탄생하고, 인간을 부러워하여 닮아가려고 하는 존재라는 설정을 하고 그에 따른 에피소드를 만들어낸다. 사실 그들이 인간을 닮고 싶어할 리가 없다. 어찌보면 신이 되고자 하는 우리 스스로의 욕망일수도 있고, 자신을 닮은 존재를 만들고자하는 본능일 수도 있다.

인간은 인간이 아닌 다른 종이나, 인간이 만들어내고 있는 새로운 종들에게는 자비심이 없다. 인간은 그 긴 역사 내내 그들을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식량, 실험대상, 인간을 위한 도구 정도로 여기도록 생각해왔고, 교육 받아왔다. 그래서 육체의 시간을 연장시키기 위해 수백 수천의 쥐를 잘라보고, 육체의 기능을 연장하기 위해 갖가지 기계들을 만들어서 붙여댄다. 그리고 곧 그 기능에 싫증을 내며 내다 버리고 바꾸기 일쑤다. 본인이 만들어내고 있는 존재들은 인간에게 이용당하고 있는 모든 비인간들을 대변해서 인간에게 자비심을 부탁하고 있는 것이다. 스스로 인간의 껍데기를 닮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인간이 되고픔을 호소하면서.







문이삭



윤슬 #21
2024, 조형토, 도판, 한강에서 수집한 흙과 나무, 유리로 만든 유약, 1240도 소성, 27x28x28cm
윤슬 #37
2024, 조형토, 도판, 한강에서 수집한 흙과 나무, 유리로 만든 유약, 1240도 소성, 28x25x26cm





사라지고 생성되는 흐름과 이동



<윤슬>은 빛을 반사하는 세라믹 조각으로, 관람자의 시선과 빛의 방향에 따라 서로 다른 경험을 제공한다. 역사적으로 한강은 사회·문화·정치·경제적으로 중요한 장소였지만, 사건의 배경으로만 다뤄졌을 뿐, 생태적 관점을 제외하면 하나의 능동적 주체로 인식된 적은 드물다. <윤슬>은 작가의 한강에서의 신체적 경험을 바탕으로, 형태가 없는 강의 성질을 조형하고자 하며, 동시에 한강을 주체적 사물/물질로 바라보는 시선을 담고 있다.
소조의 개념을 재해석하며 동시대의 시각성, 사물, 그리고 이와 상호작용하는 인간의 경험에 질문을 던진다. 나는 소조를 점토에 국한하지 않고, 덧붙이기와 가소성을 실험하는 행위로 본다. 작업 초기에는 가소성이 뛰어나고 즉각적 제작이 가능한 플라스틱을 활용하여 이미지와 사물, 2D와 3D, 실재와 가상이 교차하는 ‘제3의 사물’을 탐구했다. 팬데믹은 흙과 신체의 관계를 발견하는 계기가 되었다. 사회적 격리 속 야외 활동이 늘며 흙은 신체를 지탱하는 최소한의 물질이 되었다. 일상의 흙으로 만든 세라믹은 불의 통제 아래 변화하는 데이터이자, 원초적인 물질이다. 점토에 형을 부여하려는 욕망과 이를 해체하고자 하는 충동과 긴장 속에 탄생한 세라믹은 때로는 일그러지고, 갈라지고, 깨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실패가 아닌, 소조가 사물로 피어나는 순간이다. 최근에는 강물이나 잊힌 사람처럼 형태가 불분명한 존재를 조형하는 실험으로 확장하고 있다.







조재영



쌍둥이 정원
2024, 골판지, 접착지, 천, 실, MDF, 페인트, 50x50x 130cm



엮어 들어가기와 자기해체



종이라는 재료를 껍질로 삼고 이 껍질을 통해 신체 부분들을 형상화한다. 그러나 종이의 유약한 물성에 의해 이들의 형태는 항상적일 수 없다. 가변성을 내포한 구조는 절단되고 그 위에 새로운 구조가 덧대어지기를 반복하며 변질된다. 조각을 이루는 기하학적 형태들은 이 과정에서 서로가 서로를 복제하고 변이시키며 관계 맺는 동시에, 새로운 기관이자 몸체로서 독특한 형상을 갖추어 간다. 기관들은 본래의 위치에서 이탈해 다른 부위에 접합되고 가지와 뿌리, 돌기와 가시들은 이 접합 사이로 엮여 들어간다. 질료가 열어젖힌 구조적 틈새 사이로 끊임없이 차이를 낳는 조각들은 중력에 이끌려 대지 위에 착륙하기를 거부한 채 공중에 부유하며 인간을 관통해 비인간의 몸으로 확장된다.


작업은 우리들 기존의 인식방식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된다. 각기 다른 인식 방식이 곧 각자의 현실을 만든다. 무엇을 인식할 것인가에 앞서,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선행되는 이유이다. 내 자신이 경험하는 일상 속 사건, 현상 등을 통해 기존 인식 방식이 작동하는 과정을 들여다보고, 그것이 우리가 당연하다고 믿는 것들과 어떻게 관계 맺고 있는지 관찰하고 실험한다.

이 질문을 토대로 그간 작업을 통해 ‘실체’, ‘주체’, ‘자아’ 중심의 인식 방식을 해체하기 위한 시도들을 해왔다. 작품 안에서 수(數, number)는 대안적 언어로 사용된다. 기존의 언어 체계는 인식 대상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고, 위계화 하는 과정을 필연적으로 갖는 반면 대안적 언어로서의 ‘수’는 대상 사이의 ‘차이’ ‘서로 다름’에 조금 더 집중하게 한다. ‘수’를 기반으로 사물의 외피(skin, cover)를 재해석해서 구조화하고 각각의 구조들을 다시 연결하고 해체하는 과정들을 반복하여 추상화된 조각들을 만든다. 이 과정은 사물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존재와의 긴밀한 관계 속에서 있고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유동적 존재라는 것을 드러낸다.






오묘초




인비트로
2022, 유리, 은, 스테인리스, 알루미늄, 레진, 90 ×130 × 160 cm
누 플레어
2025, 유리, 은, 스테인리스, 알루미늄, 레진, 120 × 230 × 110cm



기억의 물질화와 인간 너머의
생명체에 대한 상상



형태는 바다 달팽이와 심해 생명체에서 영감을 받았다. 태초의 생명처럼, 그들은 바다에서 시작되었고, 종말 이후에도 바다로 돌아간다. 바다 달팽이를 이용한 기억 전이 실험은 내게 하나의 단서를 주었다. 인간 이후의 존재들, 기억을 물질화하는 미래 생명체에 대한 상상이다.

내가 사용하는 유리와 금속은 고정된 형태가 아닌, 끊임없이 변화하는 물질이다. 유리는 겉보기에 고체처럼 보이지만, 시간이 흐르고 중력이 작용하면 그 형태를 잃고 천천히 흘러내린다. 유럽 성당의 오래된 스테인드글라스가 하단으로 갈수록 두터워지는 것처럼, 유리는 기억을 담아 흘러가는 시간의 전이물이다. 금속 또한 특정 온도에 이르면 액체가 되었다가 다시 응고되며 형태를 받아들인다. 이러한 유리와 금속의 상태 변화를 통해, 나는 기억을 추출하고 고착시키며, 물질 속에 흐르는 시간을 작품 속에 담아보고자 한다.
기술은 세상을 이해하고 설명하려는 우리에게 많은 정보를 제공한다. 그러나 자연 속에서 생명체들이 오랜 세월 서로 공존하며 살아온 방식을 이해하는 일은 여전히 우리의 숙제다. 이번 작업은 그 공존의 지혜를 되살리고, 기억과 감각이 물질 속에 스며들어 흐르며 전이되는 과정을 예술로 표현하려는 작은 시도이다.

최근 몇 년간의 작업들은 집필 중인 소설 <누디 핼루시네이션>에서 상상하게 된 인간 너머의 존재들에 바탕을 둔다. 2021년, 뇌과학자 고혜영 박사와 함께한 바다달팽이 연구에서 ‘기억의 전이와 대리 감각 실험’을 접하며, 나는 기억이 단순한 추상이 아닌, 물질 속에 담긴 실체임을 느꼈다. 신경세포들이 얽혀 만들어낸 기억은 단지 과거의 흔적이 아니라, 존재의 일부이다. 그렇다면 타자의 기억이 전이되거나 인위적으로 만들어지는 시대가 온다면 우리는 어떻게 변할까? 타인의 기억을 사고팔고, 경험하지 않은 감각을 지니는 시대가 도래한다면, 우리의 정체성은 무엇으로 정의될 수 있을까? *<누디 핼루시네이션>*은 이러한 질문에서 출발했다. 나는 기억과 감각이 넘나드는 세계 속에서 새롭게 태어날 존재들을 조각으로 형상화했다. 그들은 인류 이후의 세계에 존재할, 인간 너머의 가능성을 품은 미래 지성체들이다. 미래에 살고 있을 지성체들을 통해 우리가 잃어버린 공존의 방식을 다시금 우회해 돌아보기를 바란다.






윤순란



지워진 얼굴 No. 26
2021 , 마 사, 12 x 12(H) x 5cm
그리움 No. 6
2022 닥 섬유, 강철사, 36 x 55(H) x 34cm



몸이 여기에 있다


<지워진 얼굴>은 가까이에 있지만 포착할 수 없는 실체다. 관계를 맺기에 서로 너무 멀리에 있다. 얼굴이 사는 도처의 자리에서 타자와의 간격을 탐사한다. 접촉하고 흩뜨리고 모으고 지탱하고 내버려두고 견디고 횡단하는 일상의 이어짐이 어려운 삶을 산다. 그렇지만 지움의 효과에 의해서만 표시되는 것들이 있다. 예컨대 사라진 것, 기억되지 못한 것, 그럼에도 환영처럼 되살아나는 것, 그저 상징적인 사라짐으로 치부된 것 등 속이다. 사라진 대상은 잊었다고 생각한 순간, <그리움>으로 문득 돌아온다.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가장 가까운 것이 된다.

<지워진 얼굴>은 경계의 끝자락에 방기되어 남겨진 자, 바로 타자의 현현이며, 세계에 의한 탈자아의 현전이 나타나는 ‘저기’이다. 반면 <그리움>은 먼 곳으로부터 아직 오지 않은 몸을 기다리고, 이미 멀리 떠나간 몸을 애도하는 자가 점유한 ‘여기’를 기호화한다. 그 둘의 만남은 간격을 만들고 거리를 내는 원칙 속에서 이루어진다. 일인칭인 ‘나’는 바로 여기에서 저기를 향해 공간을 연다. 고독한 익명적 타자를 향해 실존을 건네는 몸의 형상이다. 여기와 저기 사이에는 서로에게서 분리된 거리가 있다. 서로를 지향하지만, 합일점에 한 걸음도 가까워지지 않는다. 항상 ‘나’라는 자의식이 너무 과하거나 너무 부족하고, 관계를 맺기에는 서로 너무 멀리에 있다. 무력하고 무지한 몸이 서로를 이격하는 거리에는 두터운 침묵이 고여 든다. 그러나 한 부분이 다른 부분의 바깥이 되면서, 예컨대 하나의 몸이 다른 몸의 바깥이 되면서 공간을 여는 세계에서는 침묵의 심연만이 전부가 아니다.

몸과 몸 사이에 열어놓은 틈은 순간이 살아 숨 쉬는 지점이다. 나에게서 너에게로, 너로부터 내게로 이행하는 숨이다. 고독에서 파생되는 고통 속에 자신을 열어, 경계가 매번 역동적으로 갱신되면서 흐름이 발생하도록 여지를 주는 숨통이다. 오로지 순간으로만 존재하고 흘러가는 것들에 의미를 새기는 숨결이다. 타자와 맺는 관계에 대한 반성을 통해서 도래할 숨길이다. ‘나’는 타자와 연관되어서만 ‘나’일 수 있다. 필멸의 존재에게 주어진 공동의 고독이 호소하는 바를 통해 타자를 무조건적으로 환대하는 것이 ‘우리’가 상생할 수 있는 길일 것이다.








현정윤


Stretching
2025, 플라스틱 클레이, 아크릴 물감, 알루미늄 철사, 31 x 45 x 15cm



자신의 신체를 유연하게
변형시키면서 타자에게열려있는 상태


자신의 신체를 변형시키며 울타리를 넘나들거나 몸을 젖히고 꼬면서 자라는 유연한 나무들처럼 신체가 뒤틀리고 비틀어지며 아치 형태를 이루고 공간이 되는 조각을 상상하며 만들었다. 끊임없이 변형되고 생성되는 살아있는 신체를 생각하고 그러한 신체의 움직임을 상상하면서 제작과정에서 조각을 만지면서 형상을 찾아나갔다.

플라스틱 클레이라는 점토로 만들어졌고 표면에 실리콘이 발려 흐르다 굳은 작품으로 흰색 점토 자체에 붉은 색상을 섞어 피부 자체가 색상이 되도록 하였다. 물렁한 점토의 상태에서 소조하여 굳힌 후 흐르는 액체 상태의 실리콘을 발라 조각의 굴곡을 따라 흐르다 굳도록 한 작품이다.
이분법적 구조에서 비롯되는 억압과 차별, 우열의 위계 속 권력 관계에 대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대안적인 존재 방식과 그 가능성에 대해 탐구하며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현정윤은 일상 속 드러나지 않는 힘의 구조와 그 안에서 살아가는 존재들의 양태를 관찰하고 본래의 기능을 벗어난 사물이나 불완전하고 비정형적인 존재들에 주목한다. 모호한 종과 젠더, 섹슈얼리티를 가진 하이브리드 조각들을 통해 끊임없이 생성되고 변화하는 상태를 표현하고자 하고 촉각적인 조각적 상황을 제시하여 관객이 수평적인 관계 속에서 조각을 마주하며 정지된 조각이 품은 서사와 잠재성을 상상할 수 있기를 기대하며 작업하고 있다.











보비스투 스튜디오 X 박정희 X 국승탁




환생도시 필링:코드
2025, 건축설계기반 3D모션그래픽 1분30초, 제2여객터미널 출국장 77m 대형 파사드_2식






필링:필링
2025, 건축설계기반 모션그래픽, 01분10초, 제1교통센터 K-컬처 뮤지엄 22m 외벽 파사드






피숑:코드
2025, 참여형 구조물 설치 및 3D모션그래픽 2분 3식, 제2여객터미널 면세구역 3층 232게이트 앞 전시 라운지





디지털 조각을 위한
환생 도시 건설 프로젝트


보비스투 스튜디오는 건축가 국승탁과 박정희와 함께 7개의 환생도시<필링:코드>를 설계하고 건설했다. 각 건축물은 건축물이자, 도시이고, 행성이자 각기 다른 차원의 세계관의 영역으로, 물리적 조건을 배제하고, 오로지 데이터화된 조각물의 디지털 환생을 위해 설계되었다. 이 과정에서 건축이라는 물질매체도 함께 디지털 데이터화 되었으며, 중력과 공간성의 한계에서 해방되었다. 보비스투(Wo bist du?)는 “너는 어디에 있니?”라는 의문사가 들어간 독일어로, 영어로 번역하면 Where are you?에 가깝지만, 좀 더 관용적인 의미의 나와 타자의 위치, 지위, 상태를 묻는다.

필링:필링_ 디지털 조각으로 살아가는 법
제1교통센터 K-컬처 뮤지엄 외벽 파사드

디지털 데이터화된 조각이 어떻게 디지털 세계관에서 생동할 수 있는지, 어떻게 중력의 무게에서 해방되서 자유로운 정체성을 가지게 되는지 구체적인 모션을 통해 이야기를 풀어낸다.


피숑:코드_ 조각의 데이터화 과정 체험 구조
제2여객터미널 면세구역 3층 232게이트 앞 전시공간

피숑은 핵분열(fission)과 과정을 의미하는 접미사Ing의 조합이다. 즉, 물질이 비물질의 데이터가 되는 과정에서 남겨진 잔여물(피송:코드/대형 튜브 더미)과 벗겨진 빈 껍질 조각(3D 스캐닝 영상), 그리고 디지털 환생을 위해 선택되고 변이되는 마법의 의식(ritual_꼭대기 영상)이 하나의 구조로 설계되어 있다. 참여자는 <피숑:코드>의 더미 계단을 오르며 중력(물질)이 무중력(디지털)으로 바뀌는 듯한 과정을 경험한다. 계단을 내려오면 지구세계로 다시 부활한 조각 상징물 <이스터:코드>가 기다린다. 이는 경품 뽑기 시스템으로, 한층 가볍고 귀여운 ‘무해한’ 납작한 플라스틱 조각을 소유함으로써 끝없이 가벼워지는 물질과 조각 예술, 그리고 디지털 데이터의 관계에 대해 질문한다.











2025 인천국제공항 미디어아트 전시

필링 : 코드
이동과 탐사의
미래공동체




오정은 (미술 비평가)







✈ 공 항 ✈




여기가 아닌 다른 곳이 있음을 믿는다. 언제나 우리는 그렇게 다른 어딘가를 꿈꿔왔다. 새로운 땅을 찾아 항해했고, 깊은 바다를 탐사했으며, 미지의 은하를 상상하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인간은 낯선 세계를 향해 끊임없이 움직여온 존재다. 그리고 공항은 그 모든 꿈과 이동이 교차해온 장소다. 《필링코드(peeling, filling, feeling : Code)》는 일 평균 20만 명의 여행객이 오가는 인천국제공항을 배경으로 하는 전시다. 이제 이곳은 일상과 구분되는 특별한 관문이자, 동시대 예술의 장면이 펼쳐지는 감각의 통로가 된다.



비슷한 하루는 있어도 같은 하루는 없다. 공항 이용객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이들은 과거를 등지고 떠나기도 하고, 새로운 시작 앞에 서기도 한다. 각자의 시간과 경계가 얽혀, 공항 안에 마법 같은 리듬이 생긴다. 설렘과 모험, 기대와 결심이 공기처럼 차오른다. 표준시를 벗어나 다른 시차를 지닌 몸들이 하나의 궤적 위에 겹쳐진다. 게이트를 향해 내딛는 발걸음이 스치며 보이지 않는 흐름을 낸다. 이번 전시는 그 같은 시간여행자들의 동선 위에 놓인다. 익숙함을 지우고(peeling), 낯설게 채우고(filling), 다르게 감각하면서(feeling).



철학자 미셸 푸코는 현실을 다르게 반영하고 재배치하는 공간을 ‘헤테로토피아’라고 불렀다. 일상 밖 질서와 경험이 작동하는 공항은, 그 대표적인 예다. 《필링코드》는 이 이질적 구조의 층위에 예술로 개입한다. 미술관과 갤러리 같은 여느 전시공간의 문법을 비껴가기도 한다. 제1여객터미널 내 K-컬처 뮤지엄 외벽, 제2여객터미널 출국장과 노드광장 및 게이트에 작품이 놓인다. 광고 영상을 띄우던 대형 전광판은 미디어아트 스크린으로 일시 전환된다. 여행자가 마주했던 시선의 경로에 뜻밖의 이미지가 개입된다.



현대미술 작가 노진아, 문이삭, 오묘초, 윤순란, 조재영, 현정윤이 초대됐다. 이들은 공간에 조형성을 부여하는 작업을 지속해왔다. 작가별로 플라스틱, 세라믹, 금속, 섬유, 종이, 점토 등 다양한 물질이 선택적으로 사용되었으며, 작업은 설치 혹은 조각의 범주로 분류되었다. 《필링코드》에서는 이들 작업 중 일부가 공항 내 실물 조각으로 전시되지만, 전체적으로는 입체감과 물질성을 벗고 스크린의 환영으로 바뀐다. 보비스투 스튜디오가 각 작가의 원작을 3D 모델링하고, 이를 데이터 환경에 재구성한 것이다. 이로 인해 기존의 조각은 미디어아트 장르로 넘어와, 가상현실(VR) 풍경에서 새로운 전환을 맞는다. 이는 조각의 실험으로 비유한 현실의 또 다른 가능성이다. 보비스투 스튜디오가 건축가 국승탁, 박정희와 함께 가상의 미래도시를 설계한 영상 이미지도 상영된다. 인류가 오랫동안 상상해온, 다른 세계에 대한 믿음을 또 한 번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다.





✈ 이 동 ✈



물질을 사용해 3차원 공간에 형태를 만드는 예술을 조각이라 부른다. 조각은 단단한 재료를 깎거나 부드러운 재료를 덧붙여 형상화된다. 대개 받침대 위에 고정되고, 관람자가 모든 방향에서 형태를 감상할 수 있도록 세워진다. 그런데 현대에 들어서 건축과 경관에 보다 다양한 방식으로 조각이 결합되면서 본래의 조각 범주를 넘어서는 설치미술, 대지미술 등의 개념이 등장했다. 점차 조각은 받침대 위에 놓이는 단일한 물질이 아니라, 장소와 구조의 상호 조합 속에 놓이게 되었다. 미술사학자 로잘린드 크라우스는 「확장된 장에서의 조각」을 통해 이를 이론화했다. 조각은 어떤 건축과 어느 풍경에 함께 하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다르게 확장된다.



K-컬처 뮤지엄 외벽

《필링코드》는 조각이 놓이는 장소와 구조를 다시금 옮긴다. 언어와 문화적 경계가 유연해지고, 통제와 검역이 강화되는 공항의 특수성 아래, 조각이라는 예술품을 배치한다. 입체였던 조각은 가상현실 속 디지털 이미지로 변환되어 차원을 이동한다. 제1여객터미널과 연결된 제1교통센터로 가보자. 지상과 하늘의 교통이 교차하는 이곳 지하 1층에는 지난해 개관한 K-컬처 뮤지엄이 있다. 이곳 가로 22m, 세로 5m 규모 외벽에 투사되는 미디어 파사드 <필링 : 필링(peeling : filling)>(2025)은 기존 조각품이 변신한 모습이다. 노진아 <히페리온의 속도>(2022)의 일부, 문이삭 <윤슬>(2022), 윤순란 <그리움 No. 6>(2022), 조재영 <쌍둥이 정원, 2024>(2024)의 부분, 현정윤 <스트레칭>(2025)이 각각의 이미지 원본이다. 이들은 ‘재현된 비물질 조각’으로 변했지만, 주요한 의미는 보존되도록 기획되었다. 즉, 작품의 외형을 구성했던 껍데기를 벗고(peeling), 그 조형성을 가상현실 시공간에 재현하면서도, 원작의 주제와 감각은 매체를 달리해 채워졌다(filling).



<필링 : 필링>은 실재에서 환영으로, 중력의 세계에서 무중력 데이터 공간으로 이동한 조각의 여정을 보여준다. 원작의 의미는 번역과 오역 사이를 오가며 흩어지고, 본래의 이미지는 운동성을 갖고 변형되어 영상에 스며든다. 관객을 압도하며 인간-기계 간 상호작용을 구현한 조각 <히페리온의 속도>, 흐르는 강물을 단단한 형상으로 구현하고자 실험한 <윤슬>, 오래된 직조기법으로 짜여진 부드러운 입체물 <그리움 No. 6>이 본래의 질량과 무게로부터 해방된다. 종이로 구성한 기하학적 변이의 입방체 <쌍둥이 정원, 2024>, 환경에 자기 신체를 변형하는 자연물에서 영감 받은 점토 조각 <스트레칭>도 새롭게 재배치된다. 존재는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관계와 맥락 속에 다르게 읽히고 감응하는 것임을 드러낸다.



출국장 전광판

전통 한옥의 미학이 건축에 반영된 제1여객터미널을 지나, 《필링 : 코드》는 제2여객터미널로 동선을 이어간다. 제1터미널 개장 17년 후인 2018년 개항한 제2터미널은, 최근 확장공사를 통해 면적을 넓히고 ‘아트포트(Art-Port)’ 프로젝트를 진행해 문화예술 공간으로서의 성격을 강화했다. 제2여객터미널 3층 출국장에는 전 세계 공항 가운데 최대 규모에 해당하는 가로 77m, 세로 8m 크기 LED 전광판이 설치되어 있다. 《필링 : 코드》 전시 기간 중, 미디어아트 <필링 : 코드(feeling : Code)>(2025)가 이 대형 전광판에 순차적으로 띄워진다. <필링 : 코드>는 보비스투 스튜디오가 건축가 국승탁, 박정희와 협업해 창작한 미디어 작품이다. 두 가지 버전으로 상영되는데, 첫 번째 영상에서는 오로라 빛이 감도는 수평선을 따라 초현실적으로 디자인된 구조물이 행성처럼 펼쳐져 보인다. 아름다운 수변도시 같기도 하고, 가상현실 게임의 무대 같기도 한 배경이다. 여기 세워진 구조물은 물을 순환시키고 에너지를 분배하며 살아 있는 생물처럼 움직인다. 움직이는 지붕, 알을 낳는 빌딩, 공중을 나는 수송체로 보이는 것들이 각자의 생명활동을 이어간다. 두 번째 영상은 그들 가운데 어느 고요한 쉼터로 보이는 한 곳을 비춘다. 창밖 하늘과 실내 조경이 어우러진 여기에 노진아, 문이삭, 오묘초, 윤순란, 조재영, 현정윤 작가의 디지털화된 조각이 나타난다. 현실 세계의 물질이던 조각이 다른 차원으로 이동하기 위해 어떤 문 앞에 모여 있는 듯하다. 이들은 어디로 갈까? 출국을 기다리며 공항을 찾은 수많은 여행객들과 함께, 이들 데이터 조각도 새로운 출발 앞에 놓여 있다.



사회이론가 브르노 라투르는 ‘행위’는 인간만의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사물, 기술, 시스템도 세상을 움직이는 중요한 역할을 하며, 인간과 연결되어 함께 작동한다는 것이다. <필링 : 코드>는 그렇게 다양한 존재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만들어가는 가상의 미래도시다. 이 도시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움직이는 유기적인 세계다. 여기서의 ‘이동’은 단순한 공간의 이동이 아니라, 서로 관계 맺고 새로운 상태로 바뀌는 과정이다. 작품 안의 모든 요소는 서로 얽히고 흘러가며 새로운 형태로 다시 태어난다. 조각과 건축, 기술과 자연이 어울려 생동한다. 이 작품이 주는 메시지는 인간과 비인간이 공존하며 살아가는 또 다른 세계를 상상하게 한다. 그리고 그 세계는, 단절이 아니라 되풀이되는 흐름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노드광장

공항은 아직 도달하지 않은 도착지를 상상하는 이들이 모이는 곳이다. 모아진 꿈은 현실과 예술의 분리된 벽을 부드럽게 허무는 힘이 있다. 아트포트(Art-Port)로 거듭난 제2여객터미널은 서편 탑승구역 복도를 ‘아트윙’으로 조성해, 작품이 상시 전시되는 문화예술 플랫폼으로 탈바꿈했다. 면세상가와 공공미술이 하나의 길목에서 조우하며 출국자들과 만난다. 길의 초입에 위치한 ‘노드광장’은 연결과 소통의 중심을 의미하는 이름처럼, 이동의 접점이자 다양한 문화행사가 개최되는 장소다. 《필링코드》 전시 기간 동안 이곳에는 노진아의 <히페리온의 속도>(2022), 오묘초의 <인비트로>(2022)와 <누 플레어>(2025)가 설치된다.



노진아는 인간과 기계의 관계를 철학적으로 탐색하며, 진화하는 과학기술 앞에 우리의 위치를 되묻는 작업을 전개해왔다. <히페리온의 속도>는 인공지능을 상징하는 거대한 로봇 머리가 관람객과 눈을 맞추고 대화하는 로보틱스 조각이다. 낯설고도 친숙한 얼굴의 이 작품은 우리가 도달한 현재를 돌아보게 하며, 기술이 불러온 윤리적 문제를 질문한다. 오묘초는 신체에 저장된 기억과 그 복제 가능성에 대한 과학적 실험을 바탕으로, 고고학과 SF소설을 참조한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인비트로>, <누 플레어>는 굴곡진 은빛 다리 위에 비대칭 투명 구체가 올라가 있는 조각으로, 섬세하게 세공된 금속과 유리가 미묘한 긴장을 준다. 이들 형태는 점액질의 원시동물 또는 낯선 행성의 고등 생명체를 연상케 한다. 이 전시를 통해 노드광장은 인간과 기계, 비인간 생명체가 마주하고 대화하는 교차점으로 기능한다.







✈ 출 발 ✈



미술가 마르셸 뒤샹은 어느 날 비행기 프로펠러의 유려한 곡선과 매끈한 표면을 보고, 전통 회화나 조각이 더 이상 이 시대의 미적 감각을 따라잡을 수 없다는 인식을 느꼈다. 그에게 프로펠러는 단순한 기계 부품이 아니라, 하나의 이상적인 조각처럼 보였다. 예술의 기존 형식에 회의를 품게 된 뒤샹은 이후, 작품의 외관보다 개념과 맥락에 주목하는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 그의 이러한 전환은 예술이 스스로의 존재 방식을 의심하고 확장하는 계기를 마련했으며, 현대미술이 시각적 아름다움 너머의 의미와 사고를 탐색하는 출발점이 되었다.





232게이트 앞

연간 5,200만 명이 이용 가능한 제2여객터미널에는 모두 72개의 게이트가 있다. 여행객은 이 탑승구를 통해 비행기에 올라, 새로운 도시를 향한 지상 위의 이동을 시작한다. 《필링 : 코드》의 여정은 그중 232번 게이트 앞으로 이어진다. 이곳은 물질세계에서 가상세계로 이동한 조각의 경로가 응축된 지점이다. 여기에 관객참여형 작품 <피숑 : 코드(Fission : Code)>(2025)가 설치된다. <피숑 : 코드>는 조각의 디지털화를 ‘계단을 오르는 몸의 경험’으로 구현한 구조다. 바닥에 늘어진 튜브는 물리적 껍데기의 벗어낸 흔적을 형상화하고, 계단형 구조물은 조각이 경유한 상징적 경로로 작동한다. 관람객은 이 계단을 오르며 신체의 위치 감각과 리듬 변화를 체험하게 된다. 모니터로 상영되는 3D 스캐닝 영상과 분열하는 추상 도형의 장면은, 비워진 조각 형상과 이후의 변형 과정을 상상에 기대어 각각 비유한다.



보비스투 스튜디오는 조각을 물리적 한계로부터 떼어내어 데이터로 변환한 뒤, 이를 소유 가능한 다수의 오브제로 다시 구성했다. 이에 관람객은 계단을 따라 오르내린 뒤, 구조 아래 마련된 기계 장치를 통해 <이스터 : 코드(Easter : Code)>(2025)의 소형 조각을 손에 쥔다. 이는 물질을 떠났던 조각이 다시 현실로 되돌아오는 환류 지점이자, 존재가 환생하는 시간처럼 다가온다. 이렇게 감각된 ‘출발’은, 우리가 다른 가능성의 세계를 믿고, 탐사하고 도전하던 모든 순간에 함께하던 오래된 관념이었다. 그것은 과학기술과 함께 진화하는 예술이 동시대에 부여받은 과업이기도 하다. 출발은 존재가 끊임없이 전환되고 이어지는 흐름 속에서 감각을 틔우고, 미래를 갈망하는 방식으로 우리를 이끈다. 그리고 우리는 또 한 번의 새로운 출발 앞에 서 있다. 그 출발은, 아직 가보지 않은 세계의 첫 인상을 기대하며, 지금 여기의 문을 열어젖히고 있는 것이다.














전시 투어









필링 : 코드
2025.7.14-11.14
Incheon International Airport




참여작가









총괄


총괄 기획

기술 감독

해외마케팅

그래픽 디자인


모델링

모션그래픽


프로덕션 디자인

영문 번역

3D구조 R&D

촬영

소프트 구조 R&D

철공 구조물

평론 / 글

인쇄

주관

후원

노진아
문이삭
조재영
오묘초
윤순란
현정윤
박정희
국승탁


보비스투 스튜디오
박윤주 정준우

박윤주

정준우

라이크미

보비스투 스튜디오
디자인킴앤

보비스투 스튜디오


보비스투 스튜디오
디박스튜디오

최지혜

케롤

모션플랜

엘티비티스튜디오

우보 디자인

해인공영

오정은

아트가

보비스투 스튜디오

문화체육관광부, 예술경영지원센터, 인천국제공항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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